기소영의 친구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어린이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 책입니다. 죽음에 대한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여 실감나지 않음과 슬픔과 속상함과 그리움과 추억 등을 나누어보는 것으로 죽음을 알아가도록 합니다.

기소영의 친구들과 빈자리
매일 학교 가면 만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매일매일 당연하게 만납니다. 이야기도 함께 나눕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소식을 듣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엄마가 주문해 놓은 흰 국화꽃 한 다발을 꽃 집에 들러 가지고 학교로 가져갔습니다. 학교에 가니, 친구가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에 들고 있던 국화꽃을 보며 창피해 하며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그렇지, 사실이 아니었자나!”
사실이 맞았습니다. 정말로 우리반 친구 기소영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멍합니다. 눈물이 나지도 않습니다. 나의 기분이 슬픈지 어떤지 알 수도 없습니다.
기소영의 빈자리
기소영이 죽은 이후 하루하루 날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기소영의 이름이 거론되는 숫자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기소영 자리에 놓았던 국화꽃다발도 다 시들어 빠졌습니다. 누군가는 “이거 언제까지 여기 놔둬야 돼?”라는 말도 했습니다. 지난주보다 더 침울해졌고, 아무도 소영이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은 기이하다는 말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반 분위기도, 나의 감정과 느낌도.
소영이의 친구들, 연화, 채린, 나리, 영진, 다섯명은 소영이가 아니었으면 친한 친구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리는 채린이에게 소영이가 꿈에 보이냐고 물어보았고, 꿈에서 보이는데,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웃기만 한다며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리는 소영이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날에도 이렇게 울지 않았는데, 정말 진심으로 울었습니다.
“소영아, 네가 뭐라고 말 좀 해 봐………”
채린이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무심코 소영이를 찾았습니다. 결국 채린이와 나리는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길을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잔소리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통곡이 갈무리되었습니다.
기소영 미카엘라를 위하여
기소영은 성당을 다녔고 어렸을 때부터 같은 성당을 다녔던 호준이의 안내로 성당에서 기소영을 위한 추모 미사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성당에 다니고 있는 호준이의 안내를 들으며 소영이를 위한 49재 미사를 경건하게 드리게 되었습니다. 50여분이 지나자 추모 미사는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준이가 소영이를 좋아해서 고백할까 고민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채린이는 소영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속으로 전했습니다. ‘기소영, 넌 정말 여러사람한테 소중한 사람이었어. 네가 엮어 준 우리들 사이가 이제 조금씩 보이는 거 같아. 소영아, 높은 곳에서 우리 잘 지켜봐 줘.’
졸업 앨범
12월 연말이 되자 완성되어 졸업앨범이 나왔습니다. 소영이 앨범을 부치려고 담임선생님이 주소를 찾는데, 채린이가 그 앨범을 자신이 부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졸업 앨범과 소영이 할아버지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소영의 친구들은 같은 반 모든 아이들에게 롤링 페이퍼를 돌려서 기소영에게 한마디씩 쓰고 싶은 말을 쓰도록 하였습니다. 이 롤링페이퍼는 모두 모아서, 졸업앨범 맨 뒤에 붙였습니다.
기소영의 친구들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채린이, 연화, 나리, 영진이는 기소영의 졸업앨범을 가지고 이른 새벽에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기소영의 할아버지가 사는 시골로 출발했습니다. 우리를 가장 반갑게 맞이한 소영이의 동생 소민이를 마을 어귀에서부터 볼 수 있었습니다.
기소영의 졸업사진을 소영이의 할아버지께 전달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소영이의 사진과 반 아이들의 글이 적힌 부분만 앨범에서 잘라서 봉투에 따로 담아 소영이의 납골당에 넣어주기로 했습니다.
채린이는 소영이 교통사고에 대해 할아버지께 물어보았습니다. 나리가 옆구리를 찔렀지만, 이제라도 알고 싶었습니다. 컨테이너 트럭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해 앞에 기둥에 부딪힐 것 같아서 급하게 핸들을 꺾었고 옆차선에서 달리던 소영이네 차가 컨테이너 트럭의 아래로 빨려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납골당에서 채린이, 연화, 나리, 영진이는 또 울었습니다.
돌아가는 버스터미널에서 소영이의 방귀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웃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억에 살아 있는 소영이를 만나도 괜찮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도 역시 언젠가 다시 소영이를 만나리라는 것을 그저 알기에 울지 않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말
작가는 몇년 전 우연히 보게된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다큐멘터리인 “친구들: 숨어있는 슬픔”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슬픔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어른들 몰래 친구들의 장례식장을 찾았다는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죽음을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가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고, 추모를 충분히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죽음은 삶이 끝나는 시간적 개념의 지점입니다. 종교적 개념은 더 확장됩니다.
죽음은 삶을 달려서 도착하고 도달해야하는 결승선이 아닙니다. 그저 어떤 죽음을 겪고서 남몰래 혼자 슬퍼하는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없기 바랍니다.
결론 : 나의 책리뷰
우리는 어떤 슬픔과 같은 감정을 불편한 감정으로 치부하고, 심지어 터부시하지 않았나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캄캄한 일로 여기거나 고개를 돌려야 할 일고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데, 왜 유독 죽음은 캄캄하고 고개를 돌려야 하고, 죽은 이에 대한 슬픔은 빨리 떨쳐야 하는 불편한 감정으로 여기게 되었을까요?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사실이며, 법칙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언제나 죽음을 보고 들을 수 있고, 가까운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른들은 난감해 합니다. 아이들에게 죽음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할까 머리속으로 잠시 고민해보니, 그 난감해하는 어른들과 벌써 똑같은 상태가 되고 맙니다. 애둘러 설명하려고 하다보니 너무 어렵습니다. 피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갖는 죽음이란 이미지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애도의 스테레오타입도 있습니다. 꼭 비통하고 너무 크게 슬픈 것만이 죽음일까요? 또는 죽음에 대한 애도일까요? 답은 없으나 충분히 슬픔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죽음을 설명할 때, 빙 돌리지 않고, 비유나 은유 말고, 곧장 이야기를 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충분한 애도와 추모와 충분한 추억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삶을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도 그 옆에서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이 지구 상에 자연스러운 일임을 의도적으로 넓게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까다롭고 힘들고 어려운 주제일지라도.